강흥섭, CCTP 운영위원

‘기독교 문화’ 라는 말은 그동안 교회와 많은 기독교 단체들을 통해 오랫동안 회자되어온 바, 더이상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었다. 즉 한반도에 복음이 전파된지 100년이 넘어갈 즈음부터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의 지상과제가 세상을 복음화하는 일(마28:18-20) 외에 더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것(창 1:28)임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그동안 격동의 시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가치체계들이 상충하는 가운데 나타난, 혼란스런 현실과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움직임속에서 자연스레 기독교 공동체에 스며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80년대 진보교단들을 중심으로 독재정권에 맞서는 급진적 사회운동에서부터 90년대 복음주의권에서 주도한, 다소 온건한 기독교 윤리실천 운동 및 경제정의관련 시민운동, ‘낮은 울타리’의 대중매체 모니터 운동, ‘기독교 학문 연구회’와 ‘기독대학 설립동역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세계관운동’ 그리고 최근 다양한 기독 예술인 단체들의 ‘기독교적 메세지와 예술적 재능을 담은 비상업적 예술 퍼포먼스’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기독교적 스펙드럼을 반영하는 활동들이 또 다른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문화적 책임과 적극적 현실참여를 강조하는 면에서는 공통점을 지닌다.

2007년 한국이 아닌 캐나다 토론토 땅에서 결성된 CCTP(Christian Cultural Transformation Partnership) 또한 이땅에 ‘기독교 문화’ 를 꽃피우고, 지속적 문화변혁을 추구하는 기독교 문화운동 단체중의 하나이다. 이 단체는 넓은 의미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적 사명을 도외시 하지 않지만, 복음의 전파보다는복음의 능력을 증거하는 일에 촛점을 두는 면에서 일반적 선교단체와는 다소 다르다. 그리고 올해로 6회째 문화관련 컨퍼런스를 진행해온 CCTP는위에서 언급한 여러유형의 기독교 문화운동단체와도 다른 몇가지 특징과 차이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CCTP의 다른 단체와 차별되는 정체성과 문화 컨퍼런스의 성격에 대해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CCTP는 성경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르는 모든 교단들과 함께하지만, 신학적으로는 개혁주의적 입장(Reformist)을 표방한다. 즉, 16세기 루터와 캘빈을 통해 일어난, 종교개혁의 신앙적 뿌리를 계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당시에 역사적 신앙 고백과 성경의 중심사상을 정리한 문서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 캘빈의 기독교강요 등)의 가르침을 중시하며, 회원교육시 이를 반영한다. 이는 급박하게 변화하는 세상적 풍조와 유행에 맞춰 사람들이 듣고싶어하는 말씀을 전하려하기 보다는 들은 말씀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고 말씀을 주신분의 뜻을 굴절없이 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둘째, CCTP는 상업주의에 점령당한 문화의 뒤틀린 모습을 지적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온전한 기독교 세계관을 담은 대안적 문화 컨탠츠를 개발하는 창작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즉, 우리가 알거니와, 자극적인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의 청소년들은 정상적이고 품위있는 것은 지루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보다 감각적이고, 쇼킹하고, 반항적인 것이 더 매력있고 묘한 쾌감이 있다고 믿는다. 포스트 모던 시대가 되면서 모든 권위가 땅에 떨어져, 가정과 교회의 입장마저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을 누가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CCTP는 주님의 은혜와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 크리스찬 예술가들과 함께 사역한다. 그들의 신앙고백과 예술적 재능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영감을 서로 접목하여,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공연을 한다. 이러한 작품과 공연활동속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담겨있어서, 이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분명 영향을 끼친다. 세상에 취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하고 심판의 임박성을 깨닫게한다.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용서를 경험한다. 지난 6년간 우리는 이러한 간증을 여러차례 들어왔다.

셋째, 우리는 IT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획기적 발달로, 동서고금의 모든 타락한 문화정보가 인터넷이란 전세계 열린 정보 네트웍을 통해 급격히 확산되어, 전대미문의 전 세계적 문화타락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있다. 이에 대응하고자 우리는 선한 정보, 컨텐츠와 하나님의 사람을 연결하는 ‘의로운 네트웍’을 구축하고자 한다. 즉, 전 세계에 흩어져 전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찬 예술인, 사업가, 학자, 제작자, 대중매체 종사자 등을 하나로 연결하여, 선하고 의로운 정보, 콘탠츠, 기술이 바로 이 네트웍을 통해 서로 공유되고 전파되도록 지원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현재 유럽과 북미 그리고 한국의 미술인들이 서로 연결되어 만나고, 토론하고, 격려하고, 작품들을 함께 공유하면서 사역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토론토에서 영상매체 전문가들 모여 처음으로 10월, 기독교 영상제를 주최한다. 장차 이들은 함께 협력하여, 선교사들이 복음을 직접 전파하기 어려운 지역에, 그들의 언어로 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보급하여 주의 사랑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일을 확대해 나가고자 하는 비전을 품고있다. 우리는 좀더 다양한 분야의 재능있는 형제자매들이 동참하여 사역의 범위가 넓혀져 가기를 기도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문화란 구조의 틀속에서 살며, 모든 문화속에는 인식하든 못하든 세계관이 들어있다. 이러한 세계관은 문화매체를 통해 소통되며, 그 역할은 대개 예술가들이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 캐나다에도 다양한 문화가 상존하고 있으며, 각 사람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문화속에서 그들의 생활양식과 소통 매체를 통해 그들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CCTP는 먼곳에 나가 선교하는 것의 중요성도 인정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땅의 거민들 중 그리스도를 유일한 주와 구세주로 고백하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임을 인정하는 이들이 실제로는 10%도 안된다는 점 또한 간과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땅 캐나다의 다양한 문화 코드에 용해되어 있는 세계관을 파악하고 이들에게 다가가고자, CCTP의 예술가들과 함께 협력하여, 이들과 서로 소통하는 길을 찾고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고자 한다.
이러한 목적의식하에, CCTP는 매년 주제를 달리하여 문화관련 컨퍼런스를 열어왔다.

이 컨퍼런스에는 주제관련 학술적 토론뿐 아니라, 음악콘서트와 미술, 사진, 건축모형, 조각, 애니메이션 등 각종 예술작품 전시회가 항상 동반되어왔다. 특별히 올해(2012)에는 이땅에 사는 무슬림과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것인가를 주제로 개종한 유대인과 무슬림 이웃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메시야관에 대해 그리고 무엇이 그들에게 중요한지에 대해 배우고 이슬람권에서 그리고 전세계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선교사들의 현지 증언도 들을 수 있었다. 다소 언어장벽이 있긴 했지만, 참여자들은 우린 모두가 복음안에서 한 형제자매인 것과 같은 부르심속에서 동일한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하는 동역자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땅을 개척한 이들은 분명 대부분 크리스찬이었을 찐대, 그 후손들이 그들의 영적 뿌리를 잃어가면서 이땅의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는 이때, 이땅 복음화에 비전을 가진 코리안들이 영향력 있는 문화사역을 통해 주류문화에 작은 물결을 일으키고, 이것이 이땅에 부흥을 가져오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이보다 감격스럽고 보람된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문화사역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혹자는 우리가 쓰는 비용이면, 아프리카의 수많은 굶주린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의 값비싼 향유옥합을 깨뜨린 것을 나무라지 않으신 것을 연상한다면, 이 사역은 숫자로 금방 계산할 수 없는 파급효화를 생각할 때 그만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올리브산에서 제자들에게 심판날과 주님의 재림에 대해 말씀하실때, 세상의 마지막은 마치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24:37-39). 이 말씀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삶의 필수과정이 잘못됬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일에만 정신을 팔고 살았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하는 우선 순위의 문제이다. 또한 왜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가 라는 생애의 목적이 뒤바뀌어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는 지금 21세기를 사는 우리시대인들에게 하는 경고이기도 하다. CCTP는 우리의 활동을 통해 이 세상의 쾌락과 자극적인 것에 취한 사람들에게 임박한 심판에 대해 말하고 속히 예수님께로 피하도록 촉구하고자 한다.
우리의 사역을 통해 단 한명이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영혼이 있다면, 이 단체는 주님이 함께하시고 일하시는 주님의 몸이란 것을 강력히 증거하는 것이 아닐까?